고객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는 “그래서 다음 달 혹은 내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항상 어렵지만 앞날을 기획하고 준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이런 미래에 대한 예측의 기본 시작은 과거 데이터를 보는 일이다. 물론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는 수많은 변수들이 고려되어야 하고, 많은 통계적 테스트를 거치게 되지만, 과거 데이터를 펼쳐 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시장에 대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데이터로 보는 한국 가전 시장의 10년.
가격 프리미엄이 지탱해 준 한국 가전 시장의 지난 10년, 그리고 그 사이의 기회
2019년 기준 한국 가전 시장의 규모는 판매 수량으로는 3천2백만 개, 판매 금액으로는 13조 8천억 원이다. 2010년부터 지난 10년의 흐름을 본다면 연평균 성장률(CAGR)은 수량 -3.4%, 금액 +0.7%로 판매 수량의 지속적인 감소세가 확인된다. 하지만 금액 성장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가전 시장 전체의 평균 가격은 2016년부터 가격 상승이 본격화되며 지난 10년을 거쳐 +4.2%라는 연평균 성장률(CAGR)을 기록하였고, 2019년에의 가전제품의 평균 가격은 40만 원을 돌파하였다. 결론적으로 보면 물량의 감소를 가격의 상승으로 상쇄하며 시장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위의 가전 시장 전체의 평균 가격 상승은 한국 가전 시장을 이루는 모든 아이템의 일괄적인 가격 인상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균 가격을 움직이는 원인은 2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동일 아이템이 물가 상승 등의 이유로 매년 가격이 상승할 수도 있고, 고가 제품의 비중이 커지면서 시장 전체의 가격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한국의 시장은 후자, 즉 고가 제품의 비중이 커지면서 전체 평균 가격이 올라간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가전제품의 가격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는데, 신 기술과 혁신에 대한 소비자의 강한 요구가 일반적인 가전제품의 특성상, 최소한 매년 또는 격년으로 새로운 아이템들이 신기능/신기술에 대한 프리미엄으로 인해 전년의 동급 모델 대비 높은 가격으로 출시되며, 과거의 모델들은 공급이 줄어들고 신모델에 의해 대체되면서 매우 빠르게 시장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 시장은 가전제품의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글로벌 가전 브랜드들의 고향이며, 이들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이 매우 높다. 이들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고, 신기술과 혁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매우 빠른, 구매력 높은 소비자들이 존재하는 한국 시장에서 매년 일어나는 가전제품의 프리미엄화의 정도와 속도는 크고 빠르다.
실제 2019년에 판매된 가전제품 모델들을 출시연도 별로 보게 되면(아래), 2019년에 출시된 제품의 가격이 1년 전에 출시된 제품의 가격 (2018년 출시 제품의 2019년도의 가격) 대비 적게는 24%, 많게는 60% 정도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나 IT 와 같이 기술적으로 예민한 제품군의 경우 가격이 큰 폭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한국 가전 시장의 가격 상승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데이터도 있다. 아래 도표는 한국 가전 시장에서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MDA의 가격대별 판매수량의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이다. (MDA를 뽑은 이유는 일반적으로 가전제품이라고 인식되는, 기술 집약적이고 상대적으로 고가이며, 교체주기가 1년 이상인 카테고리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주목할 것은 300만 원 초과 가전의 판매 비중이다. 2010년 1%도 되지 않는 선택의 비율에서 서서히 증가하여 2019년 현재, 8배 이상의 비중을 보여준다. 또한 10년간의 추이를 보았을 때 300만 원 초과 제품의 판매량은 첫 5개년의 누적 비율이 2%를 넘지 않는데, 2016년부터는 서서히 매년 1~2% 내외로 증가하여 현재는 8%에 이른다는 점이다. (분석에서 물가 인상률과 소비자 소득 수준의 변화 등은 반영하지 않았다.) 즉 고가 가전에 대한 선호는 가속화되고 있고 프리미엄으로 교체하려는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신모델과 구모델, 또는 새로운 기능과 낡은 기능 사이의 다이내믹한 대체 관계, 혹은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은, 크게는 전혀 다른 산업 간에, 작게는 동일 카테고리 안의 다양한 브랜드 간에서도 일반적이다. 그리고 한국 가전 시장에서의 이런 대체관계는 빠르고 역동적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많이 변화하고 대체되는 과정들 사이에서 브랜드들은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브랜드가 새로운 또는 향상된 기능과 그에 걸맞은 합리적인 프리미엄 가격을 소비자에게 제시할 수 있다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려는 끊임없는 수요 사이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대면 채널과 비대면 채널, 각각의 10년
앞서 한국 시장 전체의 금액과 수량 성장을 살펴봤다. 지난 10년 수요가 줄어드는 것을 가격 상승이 상쇄하는 전체 시장의 특성은 대면 채널과 비대면 채널 모두 동일하게 나타날까?
먼저 시장 판매액 기준의 성장률을 보면 (아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10년간 대면 채널의 곡선이 고하를 막론하고 시장 평균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1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한국 가전 시장에 있어서 대면 채널은 여전히 그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 수량 기준의 성장률 차트에서 특징적인 부분은 일부 구간의 비대면 채널을 제외하고는 시장 평균과 대면채널의 10년간 추이가 대부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비대면의 이는 앞서 지적한 평균 가격의 상승효과가 주로 대면채널을 통해서 더 크게 이루어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연평균 성장률로 보면 조금 더 확실히 차이를 볼 수 있는데, 대면 채널과 비대면 채널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면(아래) 대면 채널의 수량은 급격한 감소를, 금액은 소폭의 증가를 보이는 반면, 비대면 채널의 그 모습은 수량과 금액 모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취하고 있다. 즉 비대면 채널에 비해 대면채널의 가격 상승의 폭이 훨씬 컸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는 평균 가격 상승을 대면 채널과 비대면 채널로 비교해보았다면, 이제 약간 다른 측면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바로 각 섹터별로 비대면 채널의 판매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증가했는지에 대한 그림이다. 아래 표를 통해 대면 채널 대비 비대면 채널의 판매액 비율을 지난 10년간 월별로 살펴본다면 섹터별로 재미있는 결과가 얻어진다. 비대면 채널의 거시적인 상승 추세는 오로지 SDA와 IT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MDA와 CE 섹터에서의 비대면 판매 증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지난 10년의 큰 흐름을 본다면 전 제품군에서 벌어지는 광범위한 현상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현재 분석에서 정의하는 비대면 채널에는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는 제외되어 있고 (GfK POS Tracking에서 오픈마켓은 2012년부터, 소셜커머스는 2019년부터 데이터 제공), 이들의 영향을 감안한다면 전체적으로 비대면 판매의 증가를 볼 수 있겠지만, 카테고리 별로는 여전히 큰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성숙한 한국 가전 시장, 그래도 기회는 있다.
한국 가전 시장의 지난 10년은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왔다.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시장의 성장은 큰 변화 없이 고요한 듯하여도, 그 속에 제품군별, 채널별 등 각기 다른 기회들을 잡아내며 시장은 역동적으로 변화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소비자의 구매 패턴의 급변은 예측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앞서 10년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분석을 통해 알아본 절대적 수요의 정체, 비대면 거래의 카테고리 별 차별적 증가, 고가 제품에 대한 소비자 선호의 변화 등은 여전히 예측에 유효한 꼭 고려해야 할 변수일 것이다. 이들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의 증감과 함께 소비자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해 본다면, 조금 더 불투명해진 앞날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조금은 더 견고한 의사결정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런 결정들을 통해 더욱 역동적으로 변화할 한국 가전 시장의 다음 10년을 기대해 보고자 한다.
GfK Korea Market Insight 팀